한동안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에 빠져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오전 중 할당량이 끝나 점심을 먹지않고 2,3시쯤 퇴근을 했다. 더 일찍 퇴근할 때는 1시에 집에 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찍 돌아왔다고 해서 남자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싸게 고친 컴퓨터에 앉아 철 지난 남녀에 관한 사연을 다루는 예능을 틀어 두고 다음날 해도 될 일을 미리 달칵달칵 키보드를 누르며 해치웠다. 그러다 자주 들어가는 개그사이트에 들어가 밀린 게시물들을 완독하고 대충 한끼를 뱃속에 우겨 넣고 산책이라는 핑계로 시간을 때우러 동네를 거닐 뿐이었다.
 이번주는 한주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났다. 3주째먹고있는 약에 취해서 인지 하루하루에 대한 감상보다는 아무 의미없이 그냥 지낼 뿐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퇴근을 하고는 집에서 밥을 먹고 낮잠을 잔 뒤, 자주 가는 혼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저번 주 병원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술에 좀 빨리 취하시지 않나요? 간이 약을 해독시키는 만큼 술을 해독하는 양이 줄어들어서 금방 취할 거에요.”

 의사에 말에 최근 일찍 취하고 심해진 숙취를 느꼈던 것을 생각해냈다. 남자는 혼술집에서 한달 동안 읽다가 방치해둔 김애란작가의 책을 다 읽었다. 책은 재미있었다. 남자는 이 책을 각자의 계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과연,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고 있는 것 일까. 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웠다. 최근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것이 괴롭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속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이미 취한 상태였지만, 집에 오며 자주 마시던 싼 맥주를 제일 큰 사이즈로 사왔다. 집에서 술을 마시지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3주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남자의 기억은 점점 사라졌다. 중간중간 기억이 남는 것은 오랜만에 로그인한 게임의 한 장면과 아버지가 가져오신 김을 안주로 다 먹은 것. 그리고 잠을 자려 누웠을 때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한 자살 욕구를 느꼈던 것.

 술에 취했기 때문이겠지. 남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술에 깨고 나서도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강하게 남게 되었다. 사실 자살에 가까운 느낌은 아니었다. 단지 끔찍하게도 돌아오는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다음 날 남자는 심해진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한 몸 상태였지만 가기로 한 독서모임을 나갔다.

 우연히 알게 된 어플로 가입한 모임이었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한 분야에 대해서 토론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세번째 참석하게 된 모임이었다.

 사실 남자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불안해했다. 항상 느끼던 불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임은 남자의 예상과는 달랐다. 오히려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비지니스적인 관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남자였지만,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서로를 위하는 척을 하며 만나는 이 관계가 남자에게 잘 맞았다.

 어차피 내가 있든 없든 나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관계들이었으니까. 단지 지금 당장이 즐겁기에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모임. 그런 관계가 남자에겐 필요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거리감을 두고 지낼 것처럼 생각되었던 남자의 아르바이트 동료들에게서 아주 약하긴 하지만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그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10년넘은 친구와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을 다른 곳에서도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점점 무서워진 것을 느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지난 삼 주간 가장 평온했던 한주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다시 느껴지는 심장의 불안함에 남자는 평소 핸드폰에 적었던 이야기의 다음 내용을 컴퓨터의 워드에 적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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